oude
heterotopia
양방언 EVOLUTION 2023 - 구리

 

우연히 티켓팅 열린 걸 발견하고 홀린듯이 예매해서 가게 된 양방언씨 콘서트. 티켓값이 3만원밖에 안해서 부담없이 결제할 수 있었다.. 출생히스토리 때문에 가족들도 양방언씨를 알고있어서 같이 보러가자고 했는데 너무 멀다고 CD나 사오라고 해서 혼자 보러갔다. 콘서트 끝나고 한정판 USB앨범이랑 베스트앨범 두개를 잊지 않고 사서 집으로 가져가기로 함. 

 

양방언씨의 곡 중에서는 Alice in a mirror와 Asian Beauty 딱 이 두곡만 자주듣고 나머지 곡들은 손이 잘 안가는 편이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콘서트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음악취향은 어둡거나 반항적인 편이어서 밝은 곡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찾아 듣지 않는다. 양방언씨의 공연을 직접 보고나니 그의 곡이 밝고 힘찬 분위기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그러한 에너지로 가득찬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첫곡을 연주하고나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 부터 알 수 있었다. 정말 자신의 곡들 만큼이나 긍정적이고 다정하고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이라는 것을.. 목소리부터가 굉장히 밝고 농담도 잘 하고 연주하는 중간중간에 계속 관객석을 바라보면서 웃고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관객들을 감화시키는 듯 했다. 물론 나도 그랬고. 주변에서 이렇게까지 활기찬 사람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의대를 나와서 가족의 반대를 이겨내고 음악가의 길을 걷기까지 좌절도 있었을텐데 그런 시절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일까 아니면 낙천성이 타고났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요즘 침체기를 겪고있었는데 객석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앉아있으니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게 바로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이구나 싶었다. 

 

 

셋리스트 중에서 익숙한 곡은 Frontier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새로운 곡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nylon heart라는 곡으로, 기타 솔로로 시작한다. 기타의 나일론 줄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했는데 공연 당일에는 기타리스트분이 나일론줄이 아니라 쇠줄로 된 기타를 가지고 왔대서 나일론하트가 아니라 아이언하트라면서 다같이 웃었다. 양방언씨가 자신의 공연은 굉장히 많은 악기들이 함께하는 규모가 큰 공연이라고 했는데 확실히 무대가 꽉 찰만큼 연주자가 많았다. 관악기 하시는 분 중 여자분은 리코더도 연주하셨는데 alice in a mirror는 들을 수 없어도 비슷한 리코더 음색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편곡도 맡고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분이 솔로앨범을 냈다면서 그분이 Sandy라는 솔로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노래도 직접 부르셨는데 굉장히 잘 불러서 그 재능에 놀랐다. 알고보니까 버클리음대 나오신 분이더라고.. 재능이 많으실만도 함. 양방언씨가 이분과 베이스 연주자분이 최근에 결혼하셨다면서 음악이 사람의 인연을 만드는게 자신의 행복이라고 했다.. 정말 음악을 사랑하시는 것 같음. . 연주하는 내내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니 얼마나 드문 행운인가 싶어서 부러웠다. 

 

 

양방언씨는 게임, 애니메이션, 다큐 등 다양한 매체의 음악작업을 하셨는 그 중 처음으로 게임음악 작업을 시작했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마 아이온 얘기였나 그랬던 것 같다. 런던까지 가서 연주를 맡겼는데 처음에는 런던교향악단 쪽에서 게임 ost라는 말에 난색을 표하다가 게임 티저영상을 보여주니까 받아들여줬다고 한다. 게임음악도 이제 하나의 엄연한 음악 장르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그 시절의 아이온 영상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획기적인 퀄리티였나보다.. 집에와서 찾아보니까 내가 어릴때 많이 좋아했던 Forgotten Sorrow를 양방언씨가 작사작곡하셨더라고.. 당연하다 아이온 ost니까. ost앨범 전곡을 작곡하셨댔는데 어떻게 이 곡이랑 연결시킬 생각을 못한거지.. 콘서트에서는 Song of Moonlight를 연주하셨지만 Forgotten Sorrow랑 재회하게 된 것이 너무 기뻐서 열심히 듣고있음. 사계절을 테마로 명일방주 ost를 작업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중 가장 최근 완성된 '여름'테마 곡을 들려줬다. '가을'은 아직 작업중이라고 함 ㅎㅎ 아이온이나 명일방주나 내가 해본 게임은 아니지만 아저씨부터 초등학생까지 전연령대를 아우르는 게임 음악을 작곡하셨구나 싶었다. 언젠가 내가 하게될 게임 음악도 담당해주셨으면 좋겠네... 

 

 

중간에 토크하면서 몇번이나 한국어 발음이 좋지 않은 걸 양해해달라고 했는데 한국에서 20년동안 생활하셨다는데도 아직 일본어 문장구조나 발음이 남아있어서 언어를 새로 배운다는 건 정말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걸 새삼 깨달았다.. 나 영어랑 독일어공부 앞으로 어케하냐.. (앞길막막) 암튼 원래 성격도 귀여우신것 같은데 묘하게 일본어 번역투 같이 얘기하셔서 더 귀여워보였다 ㅋㅋㅋㅋ ~랄까 같은 단어들을 바로 일본어로 직역할 수 있을 것 같았음. 그래서 그런지 파판14 음악을 담당한 소켄 생각이 나기도했다. 일반적인 연주자처럼 차려입지 않고 편하게 스니커즈에 반팔셔츠에 티셔츠를 받쳐입고 와서 더 그랬다. 물론 소켄은 좀더 내향적인 느낌이고 양방언씨는 누가봐도 외향적으로 보인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다. 두 분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일해주세요... 

 

아버지가 제주 출신이라는 소개 뒤에는 prince of jeju라는 곡을 연주했다. 전통적인 색채가 들어간 곡인데 조명이 푸른색이라서 정말 제주바다의 풍경이 떠오르는 듯 했다. 제주에서도 공연을 했었다고 하는데 그때 보러가지 못한게 아쉬웠다. 같은 제주출신인으로서 뿌리를 잊지않고 언급해주고 이렇게 곡으로 남겨줘서 너무 감동이다.. 앞으로도 종종 제주에서 공연해줬으면 좋겠다ㅜ  최근에는 공영방송에서 제작하는 고래 다큐멘터리의 음악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완성되면 꼭 한번 보고싶다. 차마고도 다큐도 언급했는데 어릴때 엄마가 좋아해서 다큐 DVD였나 ost CD가 집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니 내 어린시절은 줄곧 양방언씨의 음악과 함께해왔구나 싶어서 조금 감회가 새롭다. 이렇게까지 내 삶에 깊숙히 들어와있는 줄은 모르고있었는데. 콘서트도 다녀오고 음반도 샀으니 이제 당당하게 팬이라고 해도 되지않을까 ㅎㅎ 

 

 

객석에는 나이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시종일관 공연장 분위기가 유쾌했다. 박수도 다같이 열심히 치고 많이 웃고 ㅎㅎ 중장년층에게 엄청 예쁨(?)받는 것 같았다. 잘생겼다고 소리지르시는 분도 있었고 ㅋㅋㅋㅋ 형식적인 앵콜곡이 끝나고나서 절반정도가 객석을 나갔을때 두번째 앵콜곡을 연주해주셨다.. 나도 끝난줄 알고 나가려다가 허겁지겁 다시 돌아와서 자리에 앉음. ㅎㅎ

 

 

큰 기대없이 간 공연이었는데 너무너무 즐거운 경험이 됐다. 다음으로는 국중박에서 반가사유상을 주제로 작곡한 곡을 연주하신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가보고싶다 ㅎㅎ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