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de
heterotopia
22년 3분기

7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 민음사 

★3.5

 

독서모임으로 읽은 책. 평소에 여자 축구는 물론 남자 축구에도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축구에 빠진 사람이 말하는 열정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소심하고 갠플을 선호하는 성격인데도 팀스포츠인 축구에 빠질 수 있다니. 아무리 내성적이어도 팀스포츠를 좋아할 수 있다!고 느껴지기 보단 김혼비 작가의 <전국축제자랑>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작가 본인이 평소 사람들과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했기 때문에 팀스포츠도 좋아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모든것에 해당되지 않는 나는 조금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ㅋㅋ 그치만 스포츠 만화를 좋아하는 오타쿠로서 축구의 룰을 배워보고 싶다거나 한번쯤은 여자축구경기를 직관하러 가보고싶다는 마음이 생기긴 했다. 실제로 독서모임 친구들끼리 날씨가 풀리면 같이 가보기로 했다. 그때까지 룰을 배워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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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고독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축구를 하고싶어 했다는 점이 같이 고독을 좋아하는 동지로서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팀스포츠에서 ‘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속성이다.

따라서 나로서는 축구와 ‘팀’을 단 한번도 별개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따라서 축구를 비롯한 그 어떤 팀스포츠에 도전정신을 느껴본 적이 없다.

“선수들은 수백명의 관계를 업고 뛴다”는 말에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운 나는 아마 평생 팀스포츠와 가까워지지 못할 거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는 김혼비씨나 다른 팀원들처럼 기회만 있다면 얼마든지 축구화를 신고 볼을 차려고 할지도 모른다.

현실이 평소 스포츠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나라도 여자에게 그런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정도로 척박하더라도.

나의 도합 12년간의 체육시간을 생각해보아도 여학교에서 특별히 축구라는 선택지를 부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스탠드에 앉아있거나 피구나 발야구를 해야했다. 축구를 하려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도 좀처럼 그 적성을 발휘할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축구에 열정이 가득한 여자들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분명 세상에는 축구 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똑같이 세상의 편견과 맞서며 열정을 불태우는 여자들이 많을 것이란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 그들도 남자들의 스포츠만큼 당연하게 여겨지는 날이, 그리고 세상의 모든 덜 떨어진 남자들이 사라져서 여자의 스포츠가 남자의 것보다 우아하고 호쾌할 필요가 없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8월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전혜린 / 민서출판사

★3.5

 

전혜린의 다른 수필인 <그리고 아무말 하지 않았다>를 독서모임 책으로 읽어야 했는데 착각하고 잘못 빌린 책이다. 그래도 빌렸으니 끈기있게 끝까지 읽었는데 전혜린의 수필이 이것으로 끝이라는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는 신념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 죽음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다는 점은 매우 공감하고 있지만 그걸 매일매일 상기해야 할까? 일단 살아있으면 살아있는 데에 좀더 집중해야 하는거 아닌지... 그러다가 정신병걸려요 ;; 그런데 정말 가을만 되면 만사 제치고 누워만 있을 정도로 심각하게 우울해한다는 부분을 읽고 놀라는 것보다 그럴만 했다는 생각이 드면 나쁜사람일까. 암튼 사색에도 완급조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생각을 스위치처럼 끄고 키는건 어려운 일이지만.. 삶이라는 걸 살아가려면 어쩔수없이 그런것에 익숙하려고 노력해야하는 것 같다. 

 

 

 

 

 

 

 

권리를 위한 투쟁

루돌프 폰 예링 / 책세상

★3

 

치즈님 추천으로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솔직히 법에 대해 평소 관심이 없어서 완전히 낯선 분야였다. 학교 다닐때 독일법 수업을 들은적은 있지만 교수가 거의 날림으로 가르쳐서 독일법이 일본법에 영향을 주고 그게 다시 우리나라로 왔다는 사실 말고는 기억나는게 없지만... 이 책도 학교 법학도서관에서 빌린거다. 이걸 빌리려고 난생처음 법학도서관을 방문했다는 놀라운 사실... 도서관 안에 폭이 좁은 회오리 계단이 있어서 한번 올라갔다왔다 ㅎㅎ 열람실이나 서가나 아주 작고 낡았지만 커다란 반원모양의 통창이 있어서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닥터스트레인지에 나오는 생텀을 연상케했다. .. 

암튼 내용자체는 그럭저럭 읽을만 했고 얇아서 제때 반납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항상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다. 모두가 그만큼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아마 더 좋은 사회가 될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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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자연발생된 것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예링에 의하면 권리 또한 그것을 보장받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전제로 하며,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의무다. 예링은 이를 설명하기위해 법감정의 개념과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 등의 예시를 들어 소개한다. <미하엘 콜하스>에서 미하엘 콜하스가 민란을 일으킨 이유는 그가 자신이 “자기가 받은 침해를 배상 받고 장래의 침해로부터 동포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힘을 바 쳐야 할 의무를 이 세상에게 지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회복시켜준다는 정부의 거짓말을 믿고 무장해제 하였지만 끝내 처형당했다.

정의의 여신이 한손에는 저울을, 한손에는 검을 든 이유는 저울이 없는 검은 폭력에 지나지 않으며, 검이 없는 저울은 무기력한 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옮긴이는 부당한 권리 침해를 위한 불법적인 투정은 단죄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법이 온전하지 않거나 법 집행에 오류가 있는 상황에서 상황에서 합법적이고 온건한 투쟁만을 한다고 권리를 쟁취할 수 있을까? 세상이 검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권리를 지켜달라는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을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이 불법이었고, 서프러제트는 폭탄을 던졌다. 현대 한국사회를 보고있자면 제2, 제3의 미하엘콜하스가 등장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법감정을 내세우는 것이 무력하게 느껴질만큼 약자의 권리는 무참히 짓밟히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불법적 투쟁으로 투쟁이란 단어가 오염되는 것을 걱정하기엔 아직 우리사회가 가야할 길은 먼 듯 하다.

 

 

 

 

 

 

 

9월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 푸른숲

★3

 

내가 고른 독서모임 책. 사실 아는 것없이 그저 SF소설이 읽고싶어서 고른거였는데 친구들의 평이 좋았다. 여성노인이 주인공인 디스토피아 배경인 소설인데 흔하게 무식하고 굼뜨고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 한정지어지는 여성노인의 존재와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주변의 노인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잔류인구는 끊임없이 인구재생산을 강요하는 세계관이라 젊은이들이 많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디스토피아는 아닌 현대에서는 아마 조만간 노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인 날이 올텐데 그때는 노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시되고 일상회되는 세계... 지금은 휠체어타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권리하나 얻기 쉽지 않지만 언젠가는 길의 대부분이 휠체어를 타고다닐 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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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이 새로운 사회를 찾아 행복한 삶을 이루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주인공인 오필리아가 행성에 혼자 남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이유는 그가 살던 사회가 여성과 노인, 노동자를 억압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이 인간의 삶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곳에서 인간은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오직 물질의 생산수단으로 여겨진다. 여성은 노동력(인간)의 생산수단으로서 아이를 낳지 않으면 급여가 깎이는 등 더 강도높은 통제를 받는다. 오필리아는 약자중에 약자로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에서 이탈하여 오로지 혼자서 자기 자신만의 삶을 꾸린다. 여기까지 본다면 평범한 암울한 디스토피아 SF처럼 느껴지지만 오필리아가 살고 있는 행성의 인격체인 ‘종족’이 등장하면서 대비를 통해 인간사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오만하고 수직적인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인간사회와 달리 ‘종족’의 사회는 수평적이며 열려있다. ‘종족’에서 새끼를 가진 어머니의 목소리는 중요하게 여겨지고 출산경험이 있는(둥지를 튼) 개체는 특별한 지위를 가진다. 인간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가축과 같은 취급을 받던 오필리아는 ‘종족’에게 특별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다. ‘종족’은 새로운 지식에 열려있고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쉽게 언어와 지식을 습득하고 응용했다. 오필리아가 ‘종족’의 말을 전달하기 전까지 고정관념과 시혜적 태도에 가로막혀 진실을 보지 못한 키라의 탐사대와 대조된다. 작가는 ‘종족’과 인간의 교류 끝에 키라가 행성에 남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비판의 시선을 인간 개인이 아닌 사회로 환원한다. 또한 작가는 과거에 자신이 좋은 어머니가 아니었다고 고백하는 오필리아의 모습은 불완전하고 악습에 물든 인간이라도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언제든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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